‘디자인’이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떨까요? 창의적인 사람이 연필로 스케치하거나, CAD 프로그램으로 도면을 그리는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 상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디자인을 하는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라면? 그것이 바로 오늘 이야기할 Generative Design(생성적 디자인)입니다.
생성적 디자인은 AI가 수천, 수만 가지 설계안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인간이 그 중 최적의 선택지를 고르는 방식의 디자인 프로세스입니다. 이미 이 기술은 건축, 제품 디자인, 자동차, 패션, 게임, 도시계획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며 산업의 판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생성적 디자인의 개념과 작동 방식, 실제 사례, 그리고 디자이너와 산업 전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생성적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 ‘창작’의 주체가 바뀐다
Generative Design은 디자이너가 일일이 도면을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 AI 알고리즘이 정해진 조건과 목표에 따라 수많은 설계안을 ‘생성’해내는 방식입니다. 이때 인간은 설계자가 아니라 설정자(Constraint Setter)가 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조건을 입력합니다:
사용 가능한 재료는 알루미늄
최대 하중은 300kg
무게는 최소화할 것
제조 방식은 3D 프린팅 가능해야 함
공기 저항은 최소화할 것
이러한 제약 조건이 주어지면 AI는 이를 바탕으로 수천 개의 설계안을 시뮬레이션하고,성능, 비용, 미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물을 도출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기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화 알고리즘: 생물의 진화처럼 설계안을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는 방식
머신러닝: 기존 디자인 데이터를 학습해 더 나은 결과를 도출
물리 시뮬레이션: 설계된 구조가 실제로도 작동 가능한지 시뮬레이션
즉, 디자인은 더 이상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수학적 탐색’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실제 적용 사례 – 건축부터 패션까지 바꾸는 생성적 디자인
Generative Design은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이미 다양한 산업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기술입니다.
1) 건축 및 구조 설계
대표적인 예는 Autodesk의 Generative Design 툴입니다.
Autodesk는 건축, 기계, 제품 디자인 분야의 대표적인 CAD 소프트웨어 기업입니다. 이들이 만든 Fusion 360이라는 툴은 사용자가 몇 가지 조건만 입력하면, 구조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건축 설계나 부품 형상을 자동으로 생성해줍니다.
예: 오토데스크 본사 사무실은 실제로 생성적 디자인으로 설계되어, 직원 이동 동선, 햇빛 방향, 공기 흐름 등을 고려한 최적 구조로 설계되었습니다.
2) 자동차 및 항공 부품 설계
GM(General Motors)는 자동차 부품 설계에 생성적 디자인을 도입해,기존보다 40% 더 가볍고, 20% 더 강한 좌석 브래킷을 개발했습니다. Airbus도 항공기 내부 구조물 설계에 Generative Design을 적용해, 무게를 줄이고 연료 효율성을 높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처럼 차량이나 항공기처럼 무게와 강도가 모두 중요한 산업에서 특히 각광받고 있습니다.
3) 패션 및 스포츠 제품 디자인
Nike는 운동화의 밑창을 설계할 때 생성적 디자인을 도입하여 기능성과 미학을 동시에 충족하는 독창적인 디자인을 실현했습니다. Adidas의 Futurecraft 4D 신발도 생성형 알고리즘을 활용해 사용자 움직임에 따라 가장 적합한 지지 구조를 자동으로 설계했습니다.
4) 게임과 도시 계획
게임 개발자들은 AI를 활용해 맵 디자인, NPC 행동 패턴, 게임 내 공간 구조를 생성적으로 설계합니다. 도시 계획에서도 도로망, 건물 배치, 햇빛 도달량, 녹지 비율 등을 자동 분석해 도시 구조를 시뮬레이션하는 데 활용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어떻게 바뀔까? – 창작의 방식과 철학의 변화
AI가 디자인까지 한다면, 인간 디자이너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디자이너의 역할이 ‘조정자’ 또는 ‘디렉터’로 진화하게 됩니다.
1) 제약을 설정하는 자 – 문제 정의 능력의 중요성
AI는 문제를 풀 수는 있지만, 문제를 정의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생성적 디자인에서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지, 어떤 조건을 줄지,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결정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즉, 디자이너는 더 이상 손으로 선을 긋는 사람이 아니라, 의도와 목적을 ‘수치화’하고, 그것을 정확히 AI에 전달하는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2) ‘감성’과 ‘이야기’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
AI는 최적의 구조를 만들 수는 있지만, 디자인에 담긴 스토리, 감성, 문화적 맥락까지 완벽히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부분은 여전히 인간 디자이너의 고유 영역입니다.
예: 한 건축물이 단순히 구조적으로 완벽하다고 해서, ‘사람들이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품이 아무리 기능적으로 효율적이어도, 감성적인 매력을 주지 못하면 시장에서 실패할 수 있습니다.
3) 협업의 미래: 인간 + AI의 공동 창작
결국 우리는 AI와 협업하는 디자이너로 진화해야 합니다. 디자이너는 감성과 직관을, AI는 계산과 실행을 담당하면서 창작의 속도와 수준 모두를 끌어올리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협업은 디자이너를 단순한 ‘창작자’에서 ‘전략적 창의인재’로 탈바꿈시키게 될 것입니다.
Generative Design은 단순히 설계를 빠르게 해주는 기술이 아닙니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다시금 답하게 만드는 철학적 전환입니다. 이제 디자인은 개별 창작자의 직관이 아니라, 시뮬레이션, 데이터, 조건 기반의 문제 해결 과정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인간의 역할은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무엇을 설계할 것인지,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Generative Design은 인간과 AI가 만나는 디자인의 미래이며, 그 미래는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